임영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임영웅 콘서트는 단순히 어른들을 위한 효도대잔치가 아니다. 그 이유를 물으신다면.
글 / 최이삭(K-팝 컬럼니스트)
임영웅 콘서트는 효도대잔치가 아니다. 오히려 유교국에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위아래가 없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어르신이 아니라 관객으로 공평하게 대우한다. 셀 수 없이 많은 안전요원 배치, 휠체어 이동 보조는 배려가 아니라 자원 개념으로 존재한다. 임영웅 콘서트를 관철하는 정신은 경로우대보다는 ‘푸처핸섭 (Put Your Hands Up)’에 가깝다. 어울림과 흥겨움이 깃든 힘찬 손짓. 거동이 불편해도 움츠러들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고, 눈치보지 않고 최애의 이름을 목놓아 부를 수 있는 공간에서 나이는 그저 숫자가 된다.
지난 5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콘서트에 다녀왔다. 임영웅 콘서트에 간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당연히 “어떻게 티켓팅했어?”였다. 모른다. 정말 모르겠다. K팝 아이돌 팬 경력 28년. 티켓팅이라면 좀 친다고 자부해온 나와 검증된 금손 두 명, 그리고 농담 삼아 부탁한 머글 직장 동료까지 네 명이 참전했다. 0.1초의 승부. 결과는 머글의 승리였다. 무려 1층 VIP석을 잡아줬다. ‘초심자의 행운’은 고스톱 칠 때만 쓰는 말이 아니었다. 단 한 번도 콘서트 티켓팅을 해본 적 없는 그에게 으스대며 방법을 알려줬는데, 나도 금손들도 성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대기 40만 번대로 진입했다. 흔히 티켓팅을 할 때 ‘서버 간택’을 받아야 성공한다고 말한다. 임영웅 같은 인기 콘서트의 경우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서 승패가 결정된다. 티켓을 하늘이 내렸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하늘이 내린 그날은 비가 왔다. 월드컵경기장역을 빠져나오자마자 우산을 써서 좁아진 시야 사이로 휠체어석 티켓 부스가 보였다. 임영웅 콘서트에는 여러 특별함이 있지만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휠체어’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나는 여러 대형 공연장이 위치한 올림픽공원과 도보 10분 거리에 산다. 내 은밀한 취미는 주말에 콘서트장 서성거리기다. 입장 게이트는 잘 분산됐는지, 관객의 연령과 성비는 어떤지 따위를 살핀다. 팬데믹 이후 공연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쾌적한 휴게 공간과 좀 많다 싶을 정도의 안전요원 배치는 표준이 되고 있다. 매주, 매달 발전하는 풍경을 엄마 미소를 짓고 바라본다. 혹시 케이스포돔 앞에서 후줄근한 차림으로 MD 부스 숫자 같은 걸 세는 사람이 보인다면 그건 분명히 나다. 이 구역에서 연출 가능한 거의 모든 풍경을 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작년 임영웅 콘서트에서 굉장히 낯선 장면을 목격했다. 무려, 휠체어를 탄 사람이 많이 보였다. 대부분의 콘서트장엔 휠체어석이 있지만 가시화될 정도로 많이 보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단순히 연로한 팬의 숫자가 많기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임영웅 콘서트는 거동이 불편해도 와도 된다고 계속 사인을 보낸다. 휠체어석 티켓 부스를 공연장 맨 앞 상징적인 위치에 둔 것도 사인의 하나처럼 보인다. 슬프고 부끄럽게도 이 나라에서 교통 약자가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러나 임영웅 콘서트에서는 휠체어 이동을 도울 인력을 따로 배치하고, 안전요원이 연로한 팬을 기꺼이 업고 계단을 오르는 뭉클한 장면도 볼 수 있다. 개별의 미담이라고 퉁치기엔 너무 많은 의미가 있다. 임영웅 콘서트에는 공동체에 대한 철학이 있다.
몸이 불편한 사람도 마음 놓고 올 수 있는 환경은 콘서트장 검침원이 부캐인 내게도 큰 도움이 됐다. 스타디움 곳곳 눈 닿는 곳마다 붙어 있는 큰 글씨 안내 현수막은 양쪽 시력이 1.0인 나에게도 유용했다. 빗물에 미끄러질 뻔했는데 우연히 옆에 있던 안전요원이 부축해줘서 병원비를 아꼈다. 간이 화장실은 셀 수 없이 많을뿐더러 무척 청결했다. 부대 설비와 안전관리 영역만이 아니다. 임영웅 콘서트에는 시야제한석도, ‘시력제한석’도 없다. 360도 오픈 무대를 설치한 작년 콘서트에서는 모든 각도에 전광판이 있어 관객이 임영웅을 찾기 전에 이미 다가와 있었다. 이번에는 본체가 직접 왔다. 한 바퀴 도는 데 노래 4곡을 불러야 하는 길이의 육상 트랙 같은 무대를 여러 번 돌며 관객과 얼굴을 마주했다. VIP석 예매자의 배부른 소리지만, 임영웅이 하도 자주 앞에 와서 막판에는 신비함이 좀 사라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철학은 대관 방식으로도 확장된다. 서울에서 가장 큰 대형 공연장인 잠실주경기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가며 대안으로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떠오르고 있다. 잔디 보호가 관건인 이 시설을 초창기 대관 가수가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앞으로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임영웅 콘서트는 그라운드석을 비우고 대신 흰 천을 덮어 스크린으로 활용하며, 잔디도 보호하고 공연 수준도 높이는 일타쌍피의 선례를 남겼다.
콘서트에서 임영웅은 다정한 손주가 아니라 이름 그대로 영웅으로 존재한다. 이번엔 좌석별 단차가 가파르고 우중이라 앉아서 관람했지만, 이전에는 오프닝 메들리가 시작되자마자 임영웅이 “즐거우신가요? 그럼 일어나세요”를 외쳤다. 전광판에는 “JUMP!”라는 글자가 현란하게 반짝였다. 어르신들이 이렇게 많은데 괜찮은 걸까. 임영웅 콘서트가 처음이었던 나는 순간 의아했고, 그 의아함이 부끄러워졌다. 걸어서 오신 분들이 일어나서 점프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공연 구성도 가장 핫한 K팝 아이돌에 뒤지지 않는다. VCR 영상은 콘셉트 필름을 넘어 영화 같았고, 열기구를 띄워 공연장 하늘을 날았다. 광활한 스타디움을 무대로 공연하는 수백 명의 댄서, 곡마다 분위기를 바꾸는 그라운드 스크린이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했다. 핵심은 당연히 노래다. 공연 내내 비가 내렸지만 그날밤만큼은 청량한 5월 밤처럼 느껴졌다. 3시간 동안 스타디움 구석구석을 쉼 없이 오가며 노래했는데 호흡 한번, 표정 한번 흐트러지지 않았다. 과연 월드 클래스는 달랐다. 건사할 가족, 황혼 육아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왔을 중장년층 팬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1년 내내 곱씹어도 새로울 만큼 버라이어티했다.
임영웅에겐 나이를 잊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캐릭터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한마디로 요즘 사람 같지 않다. 올드한 취향을 가졌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임영웅은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다. 군고구마 장사, 화장 퍼프 제조, 홀 서빙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주저앉고 싶은 현실은 오히려 그를 우뚝 서게 만들었던 것 같다. 저마다의 사정과 애환을 가진 사람들과 일하며 인생을 배우고, 무명 트로트 가수로 무대에 서며 어떤 순간에도 당당히 어깨 펴는 기개를 얻었다. 이런 임영웅의 성공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를 가슴에 품고 코리안 드림을 꿈꿨던 세대의 마음을 움켜쥐었다. 그의 음악이 트로트에 기반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임영웅은 장르를 오가며 시대와 호흡하는 음악으로 명성을 쌓았다. 평론집 <우리는 왜 임영웅을 사랑하는가>는 임영웅의 강점으로 해석력을 꼽는다. 중년 여성의 고독을 노래한 ‘바램’의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대목을 부를 때는 정말 손끝이 아린 듯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그가 그런 삶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임영웅은 탁월한 해석력으로 1960년대에 도성의 ‘배신자’를 들으며 가슴을 치던 누군가의 시절을, 1980년대에 구창모의 ‘희나리’를 들으며 이별의 아픔을 달래던 또 누군가의 시절을 소환한다. 과거와 현재가 뜨겁게 이어지는 콘서트장에서 나이는 또 한번 숫자가 된다. 오직 치열한 과거를 지나 살아남은 한 사람만 존재한다.
사실 임영웅 콘서트에선 나이의 구애 없이 누구라도, 그의 노래를 단 한 곡도 모르더라도 새로운 즐거움과 문화적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절망적인 티켓팅 확률 때문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을 뿐. 이 리뷰를 읽고 더 궁금해진 독자가 있다면 희소식을 하나 전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의 실황을 담은 영화가 오는 8월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참고로 5만 관객이 들어찬 스타디움에서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으쌰라으쌰”를 떼창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아파트’의 가락에 맞춰 어깨춤을 춰본 적 있는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며 관람할 수 있다. 부모님과 함께, 친구와 함께 꼭 한번 영화관을 찾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