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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으로 뚝딱 가를 수 있는 것은 없기에, ‘산과 친구되기’展

얼마 전 가족들이 함께 볼 만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감상했습니다. 이를테면 <나의 문어 선생님>이나 <펭귄 타운> 같은 작품은 어른에게도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인데요. 특히 공기처럼 당연하다 여기는 자연을 존중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더욱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감동을, 저는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출신 작가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Daniel Steegmann Mangrané)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고 있거든요. <산과 친구되기>라는 전시 제목이 정말이지 맘에 들었습니다. ‘자연과 문화의 복합적인 관계’를 설명하는 데 이토록 어울리는 제목이 또 있을까요.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 개인전 ‘산과 친구되기’ 모습.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 개인전 ‘산과 친구되기’ 모습.

동식물학에 깊은 관심이 있는 작가는 생태철학적 세계를 드로잉, 사진, 비디오,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섬세하게 다루어왔습니다. 특히 브라질의 대서양 우림인 마타 아틀란티카와 아마존 우림에 깊이 매료되어 숲을 오래 탐구했는데요. 그는 숲을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환경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세계의 복합성을 구현하는 살아 있는 존재로 이해합니다. 인간 중심의 근대주의적 자연관 내지는 욕망, 혹은 지금껏 그것이 만들어낸 상황을 더없이 정직하게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의미겠지요. 그리고 작가는 강남 한가운데 위치한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공간에 실제와 인공이 교차하는 시적인 숲, 이 모든 걸 뛰어넘는 이상적인 숲을 탄생시킵니다.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 개인전 ‘산과 친구되기’ 모습.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 작가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건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가 만들어낸 자연의 공간이 더없이 추상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작가는 인간의 특권으로 여겨온 기하 추상을 스스럼없이 자연에 대입합니다. 열대우림과 거친 바위, 작은 나뭇가지나 곤충 같은 자연의 존재는 일종의 시어가 되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간결하고 정제된 한 편의 시로 승화합니다. 적어도 이곳에는 문화와 자연, 인간과 환경, 주체와 객체 사이 이분법은 없습니다. 오랫동안 자연, 그리고 그 본질을 고민해온 작가는 인간 세계의 배경이나 분리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통합된 존재로서 숲을 소환합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 있다면 바로 건물 중정의 정원일 겁니다. 작가는 이곳을 세계 안팎을 모두 품은 소담한 정원으로 탈바꿈시킵니다. 산에서 오래 자란 붉은 소나무와 그 위로 내리치는 번개 같은 존재가 보이지 않거나 멀리 있는 것 같던 자연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입니다. 실제와 상상이 엮어낸 예술적 숲의 미로를 거닐다 보면 전시 제목 ‘산과 친구되기’가 품은 미학적, 정치적 가능성을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전시장 코너를 돌 때마다 나를 환대하는 듯 놓여 있던 자연의 요소, 이들을 처음 대면했을 때의 몽글몽글한 감정이 여전히 인간의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런 여운이야말로 작가가 전시를 통해 말하고자 한 ‘자연과 문화의 공존 가능성’이 아닐까 싶군요.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 개인전 ‘산과 친구되기’ 모습.
다니엘 스티그만 만그라네 개인전 ‘산과 친구되기’ 모습.
'우아함과 체념', 2011, 마른 잎사귀(일본 고무나무 아종), 메탈 스탠드와 환등기, 가변크기.
우아함과 체념, 2011, 마른 잎사귀(일본 고무나무 아종), 메탈 스탠드와 환등기, 가변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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