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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후보에 오른 한국 작가들

가끔 ‘미래에 없어질 직업’이란 기사가 나온다. 생성형 AI에 많은 부분을 빼앗길 거라는 두려움에 비슷한 콘텐츠가 쏟아진다. 그렇다면 AI가 넘볼 수 없는 한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일까? 누구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대량생산을 외치던 산업혁명기에도, AI 시대인 지금도 그 너머에 서서 우리의 ‘오래된 미래’가 될 분야, 바로 공예가 아닐까.

인간의 마음과 손이 빚어내는 공예를 예술로 끌어올린 것은 작가들이지만, 이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로에베가 분명 일조했다. 1846년 가죽 공방으로 시작된 로에베의 역사를 기념해 2016년 로에베 재단은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을 제정해 현대 공예의 우수성, 예술적 매력, 혁신을 예찬하고 작가를 발굴해왔다.

2026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후보가 공개됐다. 133개 지역 작가들이 제출한 작품 5,100여 점 가운데 최종 후보로 19개 지역의 30명이 선정됐다. 도자, 목공, 섬유, 가구, 제본, 유리, 금속, 주얼리, 옻칠 등을 아우르며 기술적 완성도, 숙련도, 혁신성, 예술적 비전 측면에서 뛰어난 작품이다.

최종 후보작은 오는 5월 13일부터 6월 14일까지 싱가포르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Singapore)에서 전시하며, 우승자 1인(상금 5만 유로)과 특별상 수상자 2인(각 5,000유로)은 5월 12일 발표한다.

로에베 재단의 회장 쉴라 로에베(Sheila Loewe)는 그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공예상은 동시대 공예의 놀라운 다양성과 야망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26년 최종 후보작은 깊이 뿌리내린 전통, 혁신, 기술, 상상력을 통해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싱가포르에서 개최하며 공예상의 핵심인 글로벌 대화를 반영하고, 경력의 중요한 전환점에 있는 예술가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려 한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파이널리스트에는 기쁘게도 한국 작가의 이름이 자주 보인다. 2022년에는 정다혜 작가가 전통 갓에 쓰이던 말총(말의 갈기나 꼬리털)을 활용해 만든 오브제 ‘성실의 시간’으로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최종 우승자가 됐으며, 그 후에도 한국 작가들이 포진했다. 2026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후보에 오른 한국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조수현 ‘재구성된 시선 그릇 3C1L’

1978년생.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주얼리 아티스트이자 금속공예가다. 서울대학교에서 금속공예 및 디자인을 전공해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창작 활동과 함께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모듈형 몰드 주조 기법을 중심으로 형태를 분할하고 재결합하는 작업을 이어오며, 금속의 물리적 특성과 표면에 집중한다. 2025년 재단법인 예올에서 전시를 열었고, 2024년 뮌헨 탈렌테(Talente)에서 금속 부문 상(Metal Category Award)을 수상했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 출품한 브론즈 연작 3점은 서로 다른 두 몰드 세트의 요소를 조합해 탄생했다. 이를 통해 더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형태를 구현하며, 각 작품은 미묘한 변주와 시간의 깊이를 머금는다. 형상 내부에는 성형된 구리 내벽을 삽입해 이중 레이어 구조를 만들었고, 표면은 화학적 산화 처리를 거쳐 빛에 따라 변화하는 깊은 블랙의 파티나를 입었다. 이 과정은 관람자, 사물, 시간 사이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지각을 형성해나가는 조각적 실험이다.

이종인 ‘배흘림’

1993년생.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가구 제작자이다. 현대 목가구 장인인 부친 이무규를 통해 가구 제작의 길에 들어섰다. 가구를 인간의 생리적 필요에서 비롯된 조각적 형태로 인식하며, 보편적 실용성과 미적 완성도의 균형을 작업의 근간으로 삼는다. 가구와 오브제 제작을 아우르며 몸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고 감각을 환기하며 신체와 조화롭게 호응하는 형태를 모색한다. 2024년 시카고 아테네움 미술관(Athenaeum Museum)에서 현대 가구+조명 상(Prize Designs for Modern Furniture+Lighting Awards)을 수상했다.

작품 ‘배흘림’은 두 개의 호두나무 덩어리로 구성된 조각적 벤치. 상부는 단일 블록을 깎아 축적된 나이테와 질감을 드러내고, 하부는 수직 결을 세워 구조적 방향성을 강조했다. 전기톱으로 거칠게 형태를 잡고 주먹장이음으로 결합한 후 그라인더와 대패로 다듬은 목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함께 팽창하고 수축하며 하나의 몸체로 안착되고, 불안정해 보일 수 있는 형태에서 시각적 균형을 형성한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 이런 형태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실루엣은 한국 전통 건축 기둥의 미세한 부풂을 의미하는 배흘림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흐르는 나뭇결과 곡선을 통해 신체와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이소명 ‘물질의 연대기’, ‘물질의 연대기 001’, ‘물질의 연대기 002’

1997년생.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가구 아티스트다. 스팀 벤딩 목재를 중심으로 황토 안료와 금속 등의 재료를 결합하는 작업을 주로 선보인다. 현재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2025년 서울문화재단 신당창작아케이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 그의 작업은 에인트호번 더치 디자인 위크(Dutch Design Week, 2024), 서울공예박물관·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갤러리(2025) 등 국내외 전시에서 소개되었으며, 2025년 서울 크래프트 온 더 힐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는 가늘고 긴 오크 조각을 서서히 구부리고, 엮고, 묶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 두 점의 네 다리 형상 연작을 출품했다. 고온의 증기로 구부려 탄성과 긴장을 부여받은 조각은 작가의 손을 통해 결합되며, 그 과정은 저항과 유연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물리적 협상의 결과다. 황토와 끈이 더해져 표면과 구조 사이 상호작용을 이루고, 전체 형태는 새들이 나뭇가지를 모아 둥지를 짓는 건축적 방식을 떠올린다. 재료가 쌓이고 서로 결속되는 과정에서 삶의 구조를 은유적으로 재구성하며, 서로 기대고 포개며 형성되는 집단적 지지가 결국 강인함과 안정성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박지은 ‘순환의 씨앗’

1980년생.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금속공예가이자 교육자다. 2011년부터 금속공예와 주얼리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 금속공예 & 주얼리 어워드(2019)를 수상하며 주목받았으며,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2019), 하나우의 제21회 실버트리엔날레(Silver Triennial International, 2025), 앤트워프의 DIVA 박물관(DIVA Museum, 2025) 등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박지은의 작품은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과 서울공예박물관 등 주요 공공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팽창과 수축이라는 자연의 리듬에 기반한 ‘순환의 씨앗’은 수작업으로 완성한 스털링 실버 파편 수천 개가 축적되며 밀도 높은 구조를 이룬다. 조밀하게 응집된 파편은 둥글고 납작한 실루엣을 드러낸다. 각 요소는 리넨 실로 연결되어 유연성을 지니는 동시에 스스로를 지탱하는 자립적 표면을 구축한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결합 과정은 규칙과 변주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형태는 구조적 결속을 유지한 채 미세한 팽창과 수축의 움직임을 내포한다. 씨앗을 닮은 이 응집체는 회복력과 유연성을 함께 품으며, 내부에서 외부로 번져나가는 확장의 잠재력을 조용히 보여준다.

박종진 ‘착시의 층위’

1982년생. 서울여자대학교에 조교수로 재직 중인 도예가다. 카디프 메트로폴리탄 대학교(Cardiff Metropolitan University)에서 도예학 석사, 국민대학교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작업은 공예의 규율과 수집 가능한 디자인의 개념적 접근을 결합한다. 디자인 마이애미(Design Miami), PAD 런던 아트+디자인(PAD London Art+Design), 이머지 싱가포르(Emerge Singapore), 런던의 콜렉트(Collect) 등 국제 전시에 참여했다. 2024년 여주 경기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착시의 층위’의 뒤틀린 직선형 좌석 구조는 층층이 쌓아 올리는 과정을 통해 응집된 세라믹 볼륨으로 구축되었다. 수작업으로 혼합한 안료로 색을 입힌 도자기 슬립을 종이 위에 코팅한 뒤, 이를 손으로 접고 포개며 압착해 직사각형의 밀도 높은 덩어리로 만들었다. 자연스러운 주름과 압축, 이동의 흔적은 성형 과정 속에서 표면에 그대로 보존된다. 건조 이후 1,280도의 산화 소성을 거치며 종이의 층위는 하나의 세라믹 몸체로 전환된다. 소성 중 발생한 뒤틀림은 불규칙하고 내부가 비어 있는 함몰된 프로필을 형성하며, 이후 전동 공구를 통해 표면과 구조를 다시 한번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 작업은 물질의 불안정성에 대한 작가의 매혹을 반영하는 동시에, 통제와 붕괴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포착한다.

성코코 ‘그림자 꼭두’(옵탁(Optak), 리베로(Liebero), 퍼필러브(Pupillove), 봉자(Bongja), 펍시(Pupsi)로 구성)

1979년생. 순수예술과 공예의 교차점에서 활동하는 작가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하며, 문화적 상징성과 개인적 성찰을 결합해 전통과 현대를 잇고 웨어러블한 예술의 가능성을 전달하는 오브제를 창작한다. 울산대학교와 할레(잘레) 소재의 부르크 기비헨슈타인 예술대학(Burg Giebichenstein University of Art and Design), 도쿄 예술대학(Tokyo University of the Arts)에서 미술과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녀의 작업은 국제적인 그룹 전시에 소개되었으며, 국내외 개인 및 공공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025년 네이메헌의 갤러리 도어(Galerie Door)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림자 꼭두’는 점토, 비즈, 컬러 철사, 실, 래커, 스와로브스키 스톤을 사용해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진 작은 직립 인물 형상이다. 먼저 철사와 실로 뼈대를 구성한 뒤, 점토를 입혀 신체와 구조를 형성한다. 이후 색채와 비즈 장식, 드로잉을 표면에 중첩해 반사와 장식이 응축된 지점을 만들어낸다. 이 시리즈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영혼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한국 전통 장례의 꼭두를 재해석했다. 그림자 같은 부적으로 형상화된 작품은 개성과 차이, 온기와 유머를 포용하며, 상실의 감정을 돌봄의 촉각적 언어로 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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