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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세련된 웰니스, 사우나

지금 도시에서 가장 힙한 웰니스는 사우나다.

레이어드한 브라는 후포(Hoopoe), 드레스와 슈즈, 네크리스는 샤넬(Chanel).

어릴 적 나의 주말 루틴 중 하나는 목욕탕 가기였다. ‘사우나광’이었던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고, 일요일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목욕탕에 가는 게 우리 집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때 풍경을 떠올려보면 이렇다. 아줌마들은 머리에 젖은 수건을 얹은 채 사우나 안에 둥글게 원을 만들고 앉아 모래시계가 몇 번이나 뒤집힐 만큼 긴 시간 동안 수다를 이어갔다. 명절 스트레스부터 남편 이야기, 자식 자랑까지. 주제는 끝이 없었다. 그런 어른들에게 목욕탕이 사교 클럽이었다면, 나에게는 놀이터였다. 친구와 맥반석 달걀을 까먹고 식혜를 마시며 온탕과 냉탕을 오가던 기억도 아직 또렷하다. 그때 내 목욕탕 메이트였던 친구와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는다. 그런데 우리는 성인이 된 후 단 한 번도 목욕탕에 함께 간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끄러움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초등학교 이후로는 엄마와도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 나체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아이러니하다. 목욕탕은 우리 세대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멀어진 공간이 됐다. 그런데 요즘 MZ세대가 다시 사우나로 향하고 있다.

그 세대는 더 자주, 더 의식적으로 사우나를 찾는다. 예전의 목욕탕이 ‘씻는 곳’이었다면, 지금의 사우나는 ‘리셋’ 장소에 가깝다. 열기로 몸을 데우고, 냉수에 몸을 담그고,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잠깐 멈출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도파민 과잉과 번아웃을 겪는 세대에게 균형을 되찾는 일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된 셈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가 특정 세대의 취향을 넘어 도시 문화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패션 위크 출장을 앞둔 <얼루어>의 어느 에디터는 패션쇼 취재 외에 도시에서 체험할 수 있는 이벤트를 찾다 파리의 ‘상 로슈(Sant Roch)’라는 사우나를 방문했다. 출장 기간에 맞춰 막 문을 연 ‘신상’ 사우나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목욕탕이 아니라 어느 재즈 바를 연상케 한다고 했다. 어둑한 조명, 낮게 흐르는 음악, 자연스럽게 모여든 사람들. 한국에서 익숙한 목욕 문화의 풍경인 커다란 탕도, 때를 미는 의식도 없다. 오히려 운동 후 샤워를 하는 피트니스 공간에 더 가까운 구조다. 입장 후 옷을 갈아입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간단히 샤워하고 나오는 시스템. 심플하지만 그 자체로 꽤 힙한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사우나는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작은 공간에서 시작된다. 같은 타임을 예약한 사람들이 함께 들어가 리더의 안내에 따라 짧은 명상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음악에 맞춘 움직임이 더해진다. 이어지는 세션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컨디션에 맞춰 사우나와 1인용 냉탕을 오가며 몸의 온도를 조절한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묻자 얼음 허브 볼을 깨뜨릴 때라고 답했다.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사우나 온도가 순간적으로 올라가고, 상큼한 허브 향이 공간을 채운다. 참여자들의 분위기도 색다르다. 예상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고, 남녀 비율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혼자 온 사람도 있었지만 친구나 연인과 함께 온 이들도 많다. 누군가는 새로운 자극을 위해, 누군가는 여행 중 잠시 몸의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번개 모임처럼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우나 커뮤니티’ 같은 느낌이다.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생각은 사우나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것. 조용히 땀을 빼는 정적인 문화가 음악과 움직임, 사람들의 에너지가 어우러지며 공간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며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슬리브리스 드레스는 블루마린(Blumarine), 레이어드한 브라는 후포(Hoopoe), 플라워 귀고리는 끌로에(Chloé).

비슷한 풍경은 이미 세계 여러 도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북유럽에서는 사우나가 원래부터 삶의 일부였지만, 최근에는 그 전통이 새로운 도시 문화로 재해석되고 있다. 코펜하겐의 ‘라 반키나 사우나(La Banchina Sauna)’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사우나로 유명하다. 몸을 데운 뒤 곧장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이 이곳을 상징하는 풍경이다. 저물녘이면 친구들과 와인 대신 차를 마시며 열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핀란드 헬싱키에서는 아예 공공 문화시설처럼 운영된다. 대표적인 장소인 ‘뢰윌뤼(Löyly)’는 바다를 향해 열린 거대한 목조 건물로 사우나와 레스토랑, 라운지를 함께 갖추고 있다. 사람들은 수영을 마친 뒤 모닥불 앞에 앉아 낯선 이들과도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눈다. 사우나는 몸만 데우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잠시 속도를 늦추고 서로를 만나는 도시의 공용 거실처럼 기능한다.

서울 역시 이 흐름에서 비켜서지 않는다. 다만 결은 조금 다르다. 해외가 커뮤니티형 배스하우스 문화에 가깝다면, 서울에서는 더 개인적인 웰니스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 2월 오픈과 동시에 예약이 빠르게 마감되며 조용히 입소문이 나고 있는 서울 신사동 ‘시수하우스’가 대표적인 예다. 바쁜 도시 생활 속에서 ‘온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백’이 얼마나 어려운지 자주 느꼈다는 이경민 시수하우스 대표는 단순히 몸을 쉬게 하는 장소를 넘어, 감각을 통해 신체와 정서를 차분히 정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내가 직접 찾은 시수하우스 역시 비슷했다. 두피와 어깨를 먼저 풀어주는 프리 터치 케어를 시작으로 사우나와 온욕, 쿨링이 이어진다. 따뜻함과 차가움, 물과 공기, 향과 촉감, 소리까지 여러 감각이 겹쳐지며 어느 순간 머릿속 생각이 잦아든다. 스마트폰을 내려둔 채 몸과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는 느낌이 얼마 만인지 모른다.

어쩌면 사우나의 부활은 단순한 트렌드 이상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의도적으로 멈춤을 선택하고 있다. 도파민으로 가득한 일상 속에서 자극을 더하기보다 감각의 볼륨을 낮추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세대에게 사우나는 목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몸을 씻는 장소라기보다 잠시 스스로를 정리하는 작은 리추얼. 요즘 사람들이 쉬는 방식이자 나를 위한 작은 충전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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