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막부의 11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나리(德川家齊·1773~1841)는 40명의 측실과 53명의 자손을 두고 방탕한 생활로 국고를 탕진한 '속물 쇼군'으로 유명하다. 1841년 이에나리가 사망하자 12대 쇼군 이에요시(家慶)가 폐정 개혁에 나선다. 소위 '덴포(天保)의 개혁'이다.개혁의 실권을 쥔 로주(老中·막부의 국정 총괄자) 미즈노 다다쿠니(水野忠邦)는 당시 사회문제가 되던 급격한 인플레이션 해소를 급선무로 인식했다.그는 '가부나카마(株仲間)'를 물가 앙등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서민 생활 안정을 명목으로 가부나카마 해산령을 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