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 이후 고다이로(五大老)의 좌장으로 국정 주도권을 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곧바로 전후 처리 외교에 나선다. 조선 강화(講和) 임무를 부여받은 것은 쓰시마의 소(宗)씨였다. 국교가 재개된 1607년까지 총 23회에 걸쳐 소씨의 사절이 조선을 찾았을 정도로 소씨는 필사적이었다. 전란 직후 교섭은 좀처럼 진전되지 못했다. 명군은 일본군 철군 후에도 2년여를 더 조선에 머무르면서 조선군과 연합군 체제를 유지한 채 일본의 재침(再侵)을 경계했다.1603년 이에야스가 쇼군에 올라 일본 권부에서 히데요시의 잔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