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9월 신중국 밑그림을 결정하는 정치협상회의가 열렸을 때만 해도 공산당 등 46개 단체 662명이 대표로 참석했다. 지금처럼 공산당 일색만은 아니었다. 당시 마오쩌둥은 '민주(民主)'를 유달리 강조했다. '민주 집중제'와 '인민 민주 독재'가 대표적이다. 전자는 토론으로 당론이 정해지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후자는 다수인 인민에 대해선 민주를 하고 소수인 '인민의 적'에 대해선 독재를 한다는 뜻이다. 마오는 1950년대부터 '반(反)우파 운동'이란 이름으로 '인민의 적' 색출에 나섰다. 1976년 죽을 때까지 온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