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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패션 매거진 편집장

세계적으로 유명한 <10 매거진> 편집장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맸다. 그녀는 잃어버린 시간을다시 짜 맞출 수 있을까?

코로나 때문에 이동 제한령이 내려졌어요.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곧 내가 더 이상 내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도에 튜브가 삽입되면서 후두가 손상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4 월 17일이었다. 그 전 한 달 내내 나는 전 세계 국가를 봉쇄시키고 수십만 명을 죽인 그 악명 높은 질병에 시달렸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기억나는 것은 4주 전 구급차에 실려갈 때뿐이다. 3월 셋째 주였다. 수없이 많은 패션쇼를 돌아다닌 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심각할 정도로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좋은 것도 아니었다. 가족이든 업계에서든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목소리로 말하지만 나는 정말 활동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흔히 걸리는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이 아파왔다. 아니면 몇 주 동안 정신없이 이어지는 패션쇼를 관람하면서 맨 앞줄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고, 늦은 밤까지 식사 자리에 참석하고, 잠도 거의 못 자면 생기곤 했던 패션 플루에 걸린 것 같기도 했다.

기침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54세인 나는 증상을 더 위험에 빠트릴 기저 질환도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일 리 없어요. 내가 런던 집에서 2주 동안 의무적으로 자가 격리 중일 때 남편에게 말했다. 20년 전에 창간한 계간지 <10 매거진>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나는 패션쇼 시즌 이후 보통 팀과 상의하고, 기사를 배분하고, 사진 촬영을 계획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물론 이번에는 집에서 그 일을 계속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함께 일한 밀라노와 파리의 스타일리스트들과 편집자들이 아프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어느새 내 호흡은 얕아졌고 체온이 급속히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감기약을 더 많이 복용했다. 그래도 체온이 내려가지 않았다. 꼼짝 못하고 누워서 지냈고 알려진 정보도 거의 없었다. 3월 20일에 체온이 40도를 육박하자, 나는 111에 전화를 걸었고 999에 전화하라는 지침을 받았다. 힘들게 구급차에 올라타는데 런던 북부에 있는 집 현관에 서 있는 남편과 아들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무서워서 울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는 기억이 온통 흐릿할 뿐이다. 병원에서 보낸 몇 주간의 기억을 짜 맞춰보면, 죽음을 코앞에 둔 느낌을 비롯한 무수한 느낌이 있었다. 닿을 수 없는 꿈속에서 산산이 흩어진 사진을 찾아 헤매는 듯 말이다. 앰뷸런스에서 가족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내게 한 남자가 산소 마스크를 씌워준 것이 기억난다. 빈 병실이 없었기에 침상에 누워 기다려야 했던 바넷병원(Barnet Hospital)의 긴 복도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이틀 동안 내가 보낸 문자와 사진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최근 한 친구가 그 당시 내게 받은 사진을 다시 돌려 보게 해주었다. 산소 마스크를 쓰고 침대에 앉아 3월 21일 찍은 사진이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날 자신의 사진을 보는 것은 정말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게다가 자기가 직접 찍은 사진이라면 더 그렇다. 그날 마스크를 쓴 내 얼굴을 기억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인지, 너무 악몽 같아서 스스로 기억하지 않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기억나는 것은 호흡할 수 없었다는 것뿐이다. 사람들이 전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다. 익사하는 것과 같다. 숨을 고르려고 노력해도 자유자재로 되지 않는다. 거칠게 호흡하게 된다. 갑자기 이 세상에서 모든 산소가 빨려 나가는 바람에 내가 마실 산소가 부족해진 것처럼 혼란스럽고 무섭다. 3월 22일, 사람들이 나를 ICU(집중 치료실)로 옮겼다. 그 시점 나는 거의 의식이 없었다. 남편은 병원으로부터 내 상태가 굉장히 심각해져서 혼수상태에 빠졌고 3~4일간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유지해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우리가 지난 몇 달간 배웠듯이 인공호흡기는 마음을 달래주는 ICU의 구세주가 아니다. 그것은 거칠고 침습적인 최후의 수단이다. 혼수상태에 빠지면, 약을 투여해 호흡근을 이완시키고, 기도 깊숙한 곳에 튜브를 삽입하고, 에어 프레셔 시스템을 작동해 가습 산소를 폐 속으로 주입하는 것이다. 이런 처치를 받으면 예후가 좋지 않다. 삽관 환자의 60~70%가 이겨내지 못한다. 십중팔구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그나마 이겨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극심한 공포를 심어준다. 몸이 정체되는 바람에 신체 기관이 불안정해지고 근육이 위축된다. 뇌 손상에 심장, 간 또는 신장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고 심지어 걷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장기적인 회복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나는 거의 4주간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가족과 분리된 채 의식이 흐릿한 어두운 세상을 떠돌던 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뉴스거리가 쏟아지는 동안 삶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세상의 이방인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25일에 대한 기억이 내게는 전혀 없다. 오로지 상상의 이미지뿐이다. 마음의 눈으로 본 의료 기기는 섬세하게 옻칠한 중국풍 가구로 바뀌어 있었고, 나를 관찰하기 위해 진찰 스테이션에 있던 의료진은 반짝이는 풀장 건너편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유리창 반대쪽에 서 있는 간호사를 보았고 꿈속에서 그녀에게 외쳤다. 들어가서 수영 좀 하게 해주세요! 물론 꿈과 현실이 공존하는 곳에 마스크를 낀 얼굴들이 있었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내 위로 떠다니는 그런 꿈을 볼 수 있다.

지금 이 시간 당신의 가족이 이런 고통을 겪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환자로 포화 상태인 ICU에선 어쩔 수 없이 모질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 가족과 친지들은 환자의 상태 변화를 체크하기 위해 하루에 한 번만 관계자에게 전화할 수 있었다. 입원한 후 속수무책으로 두 번째 주에 접어들었고, 내 상태가 악화되는 바람에 가족은 며칠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폐렴에 걸렸다. 그다음에 패혈증이 왔다. 환자분 체온이 계속 오르고 있어요.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아주 천천히 호흡하고 있어요라는 뻔한 말만 의료진이 되풀이했을 것이다. 의료진은 내 의식을 깨우려고 두 번이나 시도했고 두 번 모두 실패했다. 가족과 지인들 모두 서둘러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고 깨어나면,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는 기적적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발길을 돌렸다. 바넷병원의 NHS(영국 국민 보건 서비스) 의사, 간호사와 지원 인력이 특별히 치료해주고 보살펴주기는 했지만, 내가 죽음에 가까이 다가섰을 때 나를 구해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내가 그 어둠을 이겨내다니, 정말 축복이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가장 큰 의문은 왜?라는 것이다. 혼란스러웠다. 물론 내가 처음 의식을 되찾았을 때, 나는 여기 어디지? 며칠이지? 왜 움직일 수 없지? 같은 기본적인 것에 신경 썼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몰랐고 의지와 상관없이 감금되어 있다는 것에 본능적으로 분노했다. 의사들의 말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았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내 손이 닿지 않는 잃어버린, 숨겨진 직소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을 찾아 헤매는 것 같았다. 나는 집에 전화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휠체어 좀 갖고 와. 나 좀 여기서 꺼내줘! 우버 택시 부를 거야. 나는 내가 왜 아무도 볼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몇 주가 지나서야 내 몸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지 조금씩 믿겨졌다. 바이러스를 극복하면서 내 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약해졌다. 혼자 팔을 들어 올릴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거의 말도 할 수 없었다. 폐도 너무 약해져서 혼자 의자에 앉은 것 뿐인데도 8층 계단을 뛰어오른 것처럼 숨을 헐떡거렸다. 휠체어가 필수품이 되었다. 특히 시력을 많이 걱정해야 했다. 처음에는 겁날 정도로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나아졌다. 한 조각, 한 조각,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조각 중 상당수가 내게는 진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는 했지만. 코로나 병동을 취재한 BBC 다큐멘터리 시리즈 <Hospital> 두 편을 보니 도움이 되었고, 의사들이 나를 진료하면서 적어놓은 치료 일지도 그랬다. 물론 읽다 보면 등골이 오싹해졌지만, 그것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ICU의 블랙홀을 겪은 뒤 내 삶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도구였다. 나는 체력을 회복하기 시작했고, 다행히도 동생 피도스(Phidos)가 알아봐준 애스콧 재활 센터(Ascot Rehab Center)로 옮겨도 될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그리고 접촉할 수 없지만, 드디어 그 재활 센터의 정원에서 남편과 아들을 면회하는 날이 왔다.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이었다. 앰뷸런스가 나를 실어온 이후 여러 주가 지났고, 그 부자에게는 이뤄지지 않을 일처럼 느껴지던 가족 상봉이 실현된 것이었다. 매일 여동생 에르미오니(Ermioni)가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 요리를 가져와서 집밥을 맛보게 해주었다. 친구들은 열심히 문자를 보내왔다. 메시지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벅차게 만들었고, 나는 사랑에 압도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작은 호의에도 눈물을 지었다.

재활 센터는 뜻밖의 선물 같은 곳이었다. 나는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의 실타래를 천천히 풀기 시작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괜찮은 척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 온전히 회복에 온 힘을 쏟았다. 나를 되돌리는 데 도움이 되는 집중적인 물리 치료와 인지 훈련, 심리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마침내 4주간의 과정을 잘 마친 뒤 퇴원을 허락받았다. 내 집의 현관문을 내 발로 걸어 들어섰을 때 흘린 기쁨의 눈물과 들뜬 기분은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였다. 나는 가족을 두 팔로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으며 흐느껴 울고 말았다. 고마운 마음이 무척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변화된 내 모습 중 하나였다.

이번 사태가 삶을 리셋시키고 있다. 나는 끔찍하리만큼 무서운 과정을 겪어야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우리 모두 무엇이 중요한지, 진짜로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 조금 더 의식하게 되지 않았을까?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뿐이다. 많은 의문점이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여기 앉아 맞이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던 여름을 즐기면서, 나는 한 가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것을 제대로 활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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