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부터 아미까지 2023년 기대되는 올해의 단어
올해를 예상하며 건져 올린 15개의 단어. 거기에는 어떤 기대와 우려, 변화들이 들어 있나.
골프
골프, 정말 나만 빼고 다 해? 수치로만 답해 볼까.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서 공개한 2020년 골프웨어 시장 규모는 5조 1천억원 정도였지만, 2년 사이 6조 3천억원 규모로 뛰었다. 지난해 골프 인구 역시 5백64만 명으로 빠르게 늘었는데, 비율로 보면 국민의 10명 중 한 명이 골프를 하는 꼴이다. 또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골프 시장 규모를 9조 3천억원 정도로 바라봤다. 뭐든 예상하기 좋아하는 <타임>도 팬데믹 이후 성장할 ‘오프라인 경제’를 점쳐보면서 골프를 슬쩍 언급했다. 이 정도면 올해 골프 시장의 성장은 불 보듯 뻔한 일. 아직이라면 서퍼처럼 흐름을 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광화문광장
‘민주주의’의 정치와 문화, 철학이 태동한 ‘아고라 광장’. 역사는 ‘광장’이 가질 수 있는 힘에 대해서, 역할에 대해서, 나아가 ‘누구에게나 열린 무대’라는 가능성에 대해서 새로이 말을 건다. 우리가 광화문광장에 집중하는 바가 이 지점에 있다. 작년 8월 6일 재개장한 광화문광장은 올해 역사성을 발굴해 시민 앞에 다시 세운다. 지난 2009년, ‘도심재창조 프로젝트’로 보완을 시작한 이래 시민의 ‘현재’가 머물러 있는 공간으로, 사회적·환경적 ‘미래’ 도심의 공원으로 모습을 바꿔왔지만, 여기에 ‘과거’를 짐작하고 헤아릴 수 있는 무엇은 허약했다. 서울시가 문화재청과 머리를 맞댄 까닭이다. 복원사업은 한쪽의 우려와는 다르게 조선 왕조의 복원과는 거리가 멀다. ‘광장’이라는 공간이 갖는 정치적·문화적 시소 중앙에 역사적 균형이 놓이는 셈이다.
수소트램
2년 전, 정부는 2023년까지 수소트램을 상용화하기 위한 실증 사업에 들어갔다. 예상 사업비만 4백24억원. 산업통상자원부는 몇몇 핵심 기업과 계약을 체결하며 시설 구축의 속도를 높였고, 덩달아 관련주들도 주목을 받으며 성장을 이끌었다. 울산시가 공개한 수소트램은 길이 35미터, 폭 2.65미터, 높이는 3.7미터로 5개 칸으로 연결돼 있다. 최고속도는 시속 70킬로미터. 개발을 총괄하는 현대로템은 올 9월부터 울산항선(태화강역~울산항역) 구간에서 운행할 계획이다. 자동차에 이어 ‘수소’를 활용한 한국형 혁신 교통 모델의 탄생이 코앞이다.
웹3
웹 1은 초기 디지털 시대. 이때 우리는 특정 포털을 이용해 메일을 만들고,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웹 2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서비스를 이용하고, 기업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빅 데이터를 활용해 매출로 연결했다. 그럼 웹3는? 이를 두고 ‘탈중앙화’라고도 하는데, 쉽게 설명하면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사용자가 직접 디지털 생태계에 뛰어드는 식이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이 대표적. 그렇지만 이들은 아직 불안정하다고? 천만에. 비트코인 이 중앙은행을 비롯한 사회 수익 구조를 흔들던 때를 떠올려보면 웹 3의 생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놓쳐서는 안될 일이다. 모든 성장의 시작에는 위태롭던 걸음마가 있었으니, 주목!
디지털 헬스
디지털 헬스는 ‘정보통신 기술 ICT를 활용해 건강을 향상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포괄하는 용어다. 풀이만 두고 보면 그 범위가 넓고 모습은 난해한데, 디지털 헬스는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 작게는 디지털 워치를 이용해 생체 리듬을 채집하는 것에서부터 넓게는 첨단 의료 장비들 모두가 여기 해당된다. 올해 ‘CES’만 봐도 기기만이 아닌, 개인과 가정용 진단 시스템(어플 등)들의 공개가 대거 예정돼 있다. 요즘의 기기 발전이 디지털 헬스의 접목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떠올려보면, 영향력은 모든 산업 전반에서 몸집을 더 키울 전망이다.
셀렉션
좋아하는 위스키 라벨에 내 이름을 새겨 제품으로 출시하는 일이라면 가능할까? 아주 어쩌면? 위스키 증류소마다 프라이빗 캐스크를 업장이나 숍과 계약해 판매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때 계약 당사자의 셀렉션, 혹은 ‘셀렉티드 바이’ 등의 표현을 붙여 병입한다. 국내에서는 아란과 바 르 챔버, 와일드 터키와 유튜브 주락이월드의 사례 등이 있었는데, 최근 한 위스키 수입사의 특정 인물 이름을 새긴 위스키도 탄생했다. 개인의 이름으로는 국내 최초. 이런 변화들이 위스키 애호가들에게는 수집의 맛을 더해 위스키 시장을 더욱 활활 불태울 것이다.
불편한 여행
“여행 좀 한다”고 말하고 싶다면 한 번쯤 곱씹어볼 리스트들. 1. 지상 낙원이라는 몰디브에는 쓰레기로 쌓은 섬이 하나 있다. 2. 모두가 친절한 모 도시는 최근 몇 년 동안 월세가 n배 이상 올랐다. 원주민은 대개 그 도시를 떠났고,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웠다. 아, 그래서 영어가 잘 통했구나. 3. ‘커뮤니티 호텔’이라 불리는 신기루 같은 공간 안에는 호텔도, 식당도, 목욕탕도, 서점도, 각종 숍도 있다. 밖에 나가지 않는 동안 골목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결론. 우리는 편한 여행에 만취했다. 불편한 여행이 어쩌면 해답이 될 수도 있는 이유.
K-BBQ
‘K-’의 다음은 미식이다. 아니, 이미 그 불씨는 피어올랐다. 코리안 바비큐 최초로 미쉐린 1스타를 받은 뉴욕의 COTE에 이어 이번에는 베누의 코리 리 셰프가 샌프란시스코에 선보인 산호원이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 고기를 향한 세계의 진심이 K-BBQ, 그러니까 우리가 고깃집이라 부르는 것들의 무궁무진한 세포 분열을 불러올 것 같다.
아미
2023년은 방탄소년단이 데뷔한 이래 전원 공백을 맞는 첫 해다. 방탄소년단의 부재를 메울 다음 주자에 대한 설왕설래가 많지만, 그것은 어쩌면 다른 어떤 뮤지션이 아닌 아미라는 생각을 한다. 방탄소년단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조력자, 어쩌면 방탄소년단 그 자체인 아미. RM이 “나도 당신들의 팬”이라고 끊임없이 밝힌 아미는 수백만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이제껏 팬덤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해왔다. 그러니 BTS의 부재에도 아랑곳 않고 또다시 새로운 팬덤의 방향을 제시할 지도 모른다. 보라색 고무신을 예쁘게 신고서.
골목
‘골목 상권’이란 말은 촌스럽지만 골목을 빛내는 작은 상점들은 예쁘다. 요즘 멋쟁이 레스토랑, 카페, 바, 편집 숍은 골목으로 계속 숨어 들어가는 중이다. 단지 숨어드는 것뿐 아니라 그 안에서 고유의 문화를 피우고, 분위기를 창출한다. <골목길 자본론>을 쓴 모종린 교수가 “새로운 변화는 골목길에 있다”고 말한 것처럼 골목은 많은 것을 잉태한다. 골목골목은 모두 달라서 가치 있으며, 그 다름에는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러니까 구청 담당자들께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새해에는 X리단길, X로수길이란 말은 보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달
2023년은 달로 향하는 인간의 정거장이다. 1950년대부터 탐사선을 이용해 달을 관찰하려는 인간의 열망 발현이 높낮이를 달리하다 2020년대 들어 다시금 추진력을 발휘 중이다. 미국이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려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러시아가 46년 만에 달 탐사 선루나 25호를 연중 발사할 계획이며, 지난 2022년 12월에 쏘아 올린 한국의 달 탐사선 다누리가 우주에서 순항 중이다. 인간은 왜 달을 가리키는가. 자원탐사,우주경쟁,그이유가 무엇이든, 미지를 향한 손짓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NAME
디터 람스, 레이 임스와 찰스 임스, 르 코르뷔지에, 마르셀 브로이어, 미스 반 데어 로에, 빌헬름 바겐펠트, 샬로트 페리앙, 조지 넬슨, 피에르 잔느레, 한스 웨그너···. 흠모하는 디자이너들이 외국에 사시는 친지 같다. 하도 많이 들은 이름이라서. 유용하고 아름다운 기물이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일은 당연하지만, 2010년대 들어 급속히 팽창한 국내 디자인 가구 소비 신에서는 이 애정이 어미를 좇는 오리 떼처럼 오가곤 했다. 그 어미란 유행, 트렌드, 인기, 대세. 이제는 풍성하고 넓어진 환경을 물길 삼아 자신만의 조형미를 찾아 나설 때가 됐다. 일단 나부터.
문해력
공공기관의 기이한 높임말 문자가 불편해 언어학자 선생님께 질문했다가 업경대를 마주하게 됐다. 요약하자면 언어란 사람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창발한다는 것. 말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하는 능력이 곧 문해력이라는 것. 뒷짐을 공손히 풀고 새로이 둘러본다. ‘공사다망한 가운데’는 공사가 다 망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몇 살에야 알았나? ‘심심한 사과’가 ‘마음 심心’이라는 사실은? 어느 서비스 요금제 약정서를 살펴보다 덮어버리고 마는 내게 부족한 것은 문해력인가 이해도인가 인내심인가. 오고 가는 해 동안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읽고 있는가.
투모로우
겨울잠 든 개구리가 깨어나고 개나리가 피어나는 어수선한 겨울 길목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는 사실도 기묘하나, 서울 기준 일주일 내내 영상 15도 내외를 유지하며 푸근하던 날씨가 영하 8도까지 급강하한 2022년 11월 29일과 30일 사이는 빙하 틈처럼 아찔했다. 깊고 어둡고 차가운 절벽. 원제 그대로 ‘내일 모레 The Day After Tomorrow’라고 번안하면 와 닿지 않을 거라고 <투모로우>라 이름 붙인 영화가 오늘 일이 됐다. 절벽 앞에 선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나? 답이 희미한 물음표일지라도 던지고 던지길 바란다.
-2
새해가 되어도 한 살을 먹지 않는다. 떡국을 세 그릇쯤 먹어도 마찬가지다. 많게는 도리어 두 살이 어려진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계산하여 세는 한국식 나이(세는 나이라고도 한다), 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빼는 연 나이, 태어나면 0살부터 시작해 생일이 지날 때마다 한 살씩 먹는 만 나이가 혼용되다 만 나이로 통일하게 되면서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 개정안은 2023년 6월부터 시행된다. 별별 나이가 다 있었구나, 내 나이는 몇 살인가 손가락을 접던 와중에 중요해지는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나잇값 하는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