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 볼 일 없을 줄로만 알았던 모피가 돌아왔다
“몇 달 저러다 말겠지 뭐.” 틱톡의 Z세대를 필두로 유행하기 시작한, 빈티지 모피 아이템과 인조 모피 코트를 활용하는 ‘몹 와이프 트렌드’를 처음 접했을 때 든 생각이다. 아스펜에서 나란히 시어링 코트를 입은 켄달 제너와 헤일리 비버를 본 뒤, 셀럽의 전유물로 남으리라는 예상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퍼렐 윌리엄스의 루이 비통 2024 F/W 컬렉션에서 다리를 다 덮을 정도로 […]
“몇 달 저러다 말겠지 뭐.” 틱톡의 Z세대를 필두로 유행하기 시작한, 빈티지 모피 아이템과 인조 모피 코트를 활용하는 ‘몹 와이프 트렌드’를 처음 접했을 때 든 생각이다. 아스펜에서 나란히 시어링 코트를 입은 켄달 제너와 헤일리 비버를 본 뒤, 셀럽의 전유물로 남으리라는 예상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퍼렐 윌리엄스의 루이 비통 2024 F/W 컬렉션에서 다리를 다 덮을 정도로 긴 코트를 보며, ‘모피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뉴욕 패션 위크가 끝나자, 직감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루아르와 라콴 스미스가 각각 모피 소재의 숄과 숏 코트를 선보였고, 조용한 럭셔리를 표방하던 케이트의 런웨이에서도 버건디 컬러의 시어링 아우터를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런던의 시몬 로샤, 밀라노의 발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인조 모피 코트가 등장한 미우미우와 발렌시아가의 컬렉션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유행이 단지 ‘틱톡발 트렌드’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쯤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한 리테일 관련 전문가는 모피가 ‘미니멀한 동시에 맥시멀하다’고 설명하며, 모피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조 모피와 시어링은 차치하고, ‘진짜’ 모피까지 돌아왔다는 사실에 업계 관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모두가 모피를 쓰지 않기로 약속했던 게 아니었나? 2021년 9월, 구찌, 생 로랑, 보테가 베네타, 그리고 발렌시아가 등을 보유한 케어링은 그룹 내 모피 사용을 금지했다. 빌리 아일리시는 멧 갈라에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는 조건으로 ‘모피 사용 중단’을 내걸었고, 하우스는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삭스 피프스 애비뉴는 2022년을 끝으로 모피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다 선언했고, 캘리포니아주는 밍크, 흑담비 털, 여우 털 등 다양한 모피의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지난 12월, 영국패션협회는 향후 런던 패션 위크에 참가하는 모든 브랜드가 모피를 활용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모피는 분명 환영받지 못하고 있지만, ‘모피 코트를 입은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아직까지 유효하다. 모피는 수천 년 전부터 명예와 지위를 상징해왔으니까. 과거 이집트의 대사제는 표범 가죽 옷을 입었고, 부유한 바이킹은 비버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 1337년,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오직 기사와 성직자만 모피를 입을 수 있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7세기, 비버 모피로 만든 모자가 유행하자 비버들은 멸종 직전까지 사냥당했고, 19세기 초반 존 제이콥 애스터(John Jacob Astor)는 미국의 모피 산업을 독점하며 한때 ‘가장 부유한 미국인’ 자리에 오르기도 했으니까. 19세기 당시 뉴욕에 살던 모든 상류층 여성은 모피 코트를 하나쯤은 갖고 있었다. 이렇듯 인류는 모피를 열망해왔다. 부를 과시하기 위해, 신분 상승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기 위해. 디자이너 바흐 마이(Bach Mai)는 <보그>에 “모피는 언제나 럭셔리할 겁니다. 그 뒤에는 엄청난 갈망이 숨겨져 있죠”라고 말했다.
바흐 마이는 더 이상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파슨스와 프랑스 패션 학교(Institut Français de la Mode)를 졸업한 그는 여타 패션 디자이너와 마찬가지로 모피를 활용해 옷을 만드는 데는 무척 익숙하다. 그는 대부분의 럭셔리 하우스가 사가 퍼(Saga Fur) 같은 조직과 협약을 맺고 모피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가 퍼는 퍼 마크 인증을 거쳐, 원단이 어떤 농장에서 제작되었는지 추적 가능한 모피를 제공한다. 마이는 모피 의류가 과거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수십 년 전, 모든 것이 주문 제작으로 이루어졌던 때 말이다. “일종의 슬로우 패션이죠. 그때 사람들은 ‘평생 입는다’는 생각으로 모피를 구매했습니다. 모피 코트를 버리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죠.”
슬로우 패션의 법칙을 그대로 따라 제작하고 소비되기만 한다면, 모피 역시 지속 가능한 자원이다. 소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소가죽이 생겨난다. 도축되는 양은 고기뿐 아니라 시어링을 세상에 남긴다. 인간이 구축한 식품 공급망의 부산물인 시어링은 여타 모피와 달리 생산이나 소비가 금지되지 않았다. 우리가 먹지 않는 동물은 종종 사료, 비료 등에 활용되곤 한다. 밍크 지방이 비누를 제작하는 데 쓰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100년 전과 달리, 패션의 시간은 더 이상 느리게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의 패션계는 빠르고 소비 중심적이다. 그리고 모피를 생산하기 위해 매년 1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을 희생시킨다. 그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 추적 가능한 모피는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몇몇 럭셔리 하우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 세상 모든 모피를 ‘윤리적’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처음에는 인조 모피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만 같았다. 동물은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되고, ‘진짜 모피’가 선사하는 럭셔리한 기분은 그대로였으니까. 하지만 인조 모피는 생분해 불가능한 미세 플라스틱으로 만들며, 환경오염의 주범이기도 하다. UN의 발표에 의하면, 합성섬유로 제작한 의류로부터 매년 140억 개의 플라스틱 섬유가 바다에 방류된다. 바흐 마이는 인조 모피는 확실히 지속 불가능한 소재인 데 반해, 모피는 지속 가능한 소재라고 말한다.
많은 소비자와 디자이너 역시 바흐 마이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리고 모피를 향한 열망을 품은 이들은 빈티지에 주목하고 있다. 환경을 오염시키지도 않고, 그 어떤 동물의 목숨도 빼앗지 않으니까. 네레하(Nereja)처럼 빈티지 모피를 재활용하는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2021년,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네레하의 디자이너는 “업사이클링은 자연에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죠”라고 말한 바 있다. 빈티지 시장에서 모피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역시 다양한 이유에서 신제품보다 빈티지 모피 코트를 선호한다. 최근 패션쇼의 프런트 로에 모습을 드러낸 한 익명의 셀럽은 자신이 입은 모피 코트를 변호해야만 했다. 새 제품이 아니고, 예전부터 옷장에 있던 아이템이기 때문에 입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모피를 입는 셀럽, 그리고 모피 아이템을 런웨이에 선보이는 브랜드(특히 대형 럭셔리 하우스)의 저의는 무엇일까? 그들은 아직도 모피를 입고 싶어 하고, 모피 소비를 장려하고 싶은 건 아닐까? 소비자는 그 모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방법이 없다. 단지 아직도 모피가 열망의 대상이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콜리나 스트라다의 디자이너, 힐러리 테이모어는 디자이너들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런웨이에 오르는 모델, 그리고 옷은 디자이너의 메신저와 같아요. ‘나는 이런 걸 믿어. 나는 이런 걸 예쁘고 쿨하다고 생각해. 이게 지금의 트렌드야. 내가 보는 패션의 미래는 이런 모습이야’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던지는 거죠. 브랜드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 메시지는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패션 디자이너에게는 오랫동안 남을 수 있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옷을 만들 의무가 있습니다”라고 말한 테이모어는 한때 데드스톡 인조 모피로 만든 옷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2018년 이후로는 이조차 중단했다.
결국 모피에 대한 완벽한 대안은 없는 걸까? 2022년, 아직까지 산하 브랜드의 모피 사용을 허가하고 있는 LVMH는 런던 임페리얼대학, 그리고 센트럴 세인트 마틴과 함께 랩그로운 모피 섬유를 개발하는 협약을 맺었다. LVMH의 환경 개발 부회장, 알렉상드르 카펠리(Alexandre Capelli)는 <보그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인조 모피를 만드는 것이 그룹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인조 모피의 품질이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실제 모피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LVMH가 개발 중인 인조 모피는 실제 모피와 거의 유사하리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지만, 그들의 계획이 성공할 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몇몇 디자이너는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다.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모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캐시미어의 털을 깎아 만든 코트를 선보였고, 생 로랑의 안토니 바카렐로는 황새의 깃털을 활용해 모피처럼 보이는 소재를 만들어냈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가장 큰 의문은 ‘과연 2024년에도 진짜 모피가 팔릴까?’다. 구찌가 모피 판매를 중단한 2017년 당시, 그들이 모피로부터 얻는 수익은 약 1,000만 유로(한화 약 145억)였다. 이는 구찌 연간 수익의 0.2% 정도. 같은 해, 네타포르테 역시 ‘모피 판매를 중단하라’는 소비자의 요구를 수용했다. 결국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