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늬, “장독을 묻듯이 나를 묻었어요”
활자로 만든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는 배우이자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스타.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 수도 없이 사랑을 맹세하는 어머니. 그 이름은 이하늬. 순우리말 ‘하늬바람’에서 따서 지었다. “어부에게 고기를 몰아주는 하늬바람처럼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라는 의미예요. 성인이 되고 나서 어떻게 해야 이름처럼 살 수 있을지 고민한 적 있는데 한 선배가 이러는 거예요. 사람을 모는 바람은 어떠냐고. 그 말에 내가 어떤 영감이 되고 좋은 기운을 나누는 것도 의미 있겠다며 제 이름을 새롭게 받아들였어요.”
어느 순간 이하늬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됐다. 주체적인 힘을 가진 캐릭터를 잇달아 연기하며 그녀는 똑 부러지는 당당함과 충만한 에너지가 돋보이는 여자의 표상처럼 떠올랐다. 첫 원 톱 주연작 <원 더 우먼>에선 카랑카랑하게 일침을 놓으며 악랄한 재벌가의 기강을 잡았고, 항일 조직의 비밀 요원으로 나온 영화 <유령>에선 강직한 전사의 면모가 그렁그렁했다. 이하늬의 최신작 <밤에 피는 꽃>은 지인들로부터 “찰떡같은 캐릭터”라는 반응을 불러냈다. 그녀는 조선 시대 수절 과부에게 가해진 억압적 현실을 뛰어넘는다. “어떻게든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아가려는 ‘여화’를 연기하는 내내 줄곧 묘했어요. 약자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최근 몇 년간 이하늬는 두드러진 여성 서사 속에서 온갖 변신을 즐겼다.
“데뷔 때만 해도 여자 캐릭터는 왜 그렇게들 의존적이고 수동적이었는지 몰라요. 진취적인 인물은 오히려 욕심 많고 사납게 묘사됐어요. 그렇게 연기해야 했고요. 한때 저는 스마트한데 못된 역할을 주로 맡았어요. 그래서 변화가 크게 와닿아요. 입체적이고 다양한 캐릭터는 그냥 갑자기 나타나지 않아요. 드라마와 영화는 시대상을 반영하잖아요.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분들 덕분에 저도 그런 역할을 만날 수 있었다고 믿어요.” 이하늬의 다음 모습도 비슷한 궤도에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1980년대 영화계를 배경으로 한 <애마>를 촬영 중인 그는 “당시 여자 배우들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는지를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애달픈 환경에도 돌파구를 찾아내는 캐릭터를 연기 중이며, 그만큼 애정이 깊다고. 이해영 감독의 주된 디렉션은 “멋있고 여유 있는 여자”였다. 이하늬가 캐스팅된 건 자연스럽다.
이하늬가 연기, 뮤지컬, 국악, 쇼 프로그램을 성실하게 오가며 활동하던 때를 기억한다. 이 얘기를 꺼내자 그 시간이 있었기에 다행이라고 했다. “장독을 묻듯이 나를 묻었어요. 되든 안 되든 10년간 역할, 작업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죠. 조금 늦게 주연급 배역을 맡은 편인데 그 수많은 경험이 없었다면 저는 구멍투성이였을 거예요.” 전력투구하고 인내하던 이하늬의 시간 사이사이에는 어느덧 여유가 깃들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자신에겐 가을 서리처럼 엄격해야 한다는 이하늬의 좌우명도 유연해졌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스스로에게 엄청 냉정했어요. 기준이 높았고, 스스로에게 모진 경우도 많았죠. 이젠 그러지 않아요. ‘지기춘풍’으로 바꿔, 최선을 다하되 나에게 너그러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요가 수련을 통해 발견했고, 인생에 노련함이 붙으면서 찾아든 그 변화는 딸 ‘아리’로 인해 더 풍부해졌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하늬의 모든 무게중심은 아리에게 옮겨졌다. 엄격하고 꾸준한 자기 관리로도 잘 알려진 그에게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묻자 바로 대답했다. “지칠 대로 지쳐 집에 가도 아이를 보는 순간 힐링이 돼요. 강력한 여과 장치가 생긴 느낌이에요. 이젠 저 말고 다른 인생을 지키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 책임감이 부담 되진 않아요. 감사할 뿐이죠.” 시간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이하늬가 아낌없이 시간을 공유하는 존재. 아리의 태명은 ‘조이(Joy)’였다. “그래서인지 아리가 잘 웃어요. 타고난 기질과 에너지 그대로, 마냥 행복하면 좋겠어요. 행복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아요. 뭐가 됐든요.” (VK)